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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으로 진화한 좀비… 이기심으로 퇴화한 인간

연상호 감독의 신작 좀비 ‘군체’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 돌파

‘왕사남’보다 빠른 흥행 스코어

좀비를 조종하는 천재 생물학자

감염자 분석해 생존자 돕는 교수

사람보다 효율만 따지는 형사 등

고립된 공간 속 인간 군상 보여줘

‘부산행’과 ‘반도’로 K좀비 열풍을 이끌었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인 ‘군체’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제79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던 영화 ‘군체’가 개봉 첫 주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25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군체’는 지난 22~24일 128만1679명을 불러 모았다. 매출액 점유율은 71%에 달하며, 누적관객수는 149만9969명이다. 개봉 4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한 이 영화는 올 상반기 개봉작 중 흥행 속도가 가장 빠르다.

■’부산행’ 연상호 신작 좀비 영화

‘군체’는 ‘부산행’과 ‘반도’로 K좀비 열풍을 이끌었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집단지성’을 장착한 새로운 좀비를 선보였다. 도심의 대형 쇼핑몰 건물에 집단 감염사태가 벌어지고,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영화다.

연상호 감독은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좀비물이 클래식한 좀비와 특정 공간이 결합된 형태였다면 ‘군체’는 좀비 자체에 집중한 작품”이라며 “좀비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연출 소회를 밝혔다.

영화 속 좀비들은 물어뜯는 본능만 남은 기존 좀비와는 다르다. 이들은 개별성이 완전히 사라진 채,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업데이트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네 발로 기다가 어느 순간 직립해 두 발로 걷고,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공격한다.

천재 생물학자 ‘서영철’을 연기한 구교환은 빌딩에 생화학 테러를 감행한 뒤, 자발적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들의 우두머리로 군림한다. 그는 감염자들과 교신하며 그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는 특별한 상황을 연기한다.

연 감독은 구교환의 신체 표현을 두고 “우리끼리는 ‘마그네슘 부족 액션’이라 명명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구교환 역시 “서영철도 감염자들과 처음 교류하는 것이라 통제가 잘 안 될 때는 손짓 발짓뿐만 아니라 얼굴의 온갖 근육을 다 사용했다”며 “연 감독님이 시범을 잘 보여준 덕분”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좀비의 기괴하고 독창적인 움직임을 위해 기존의 브레이크댄스 크루나 스턴트맨뿐만 아니라, 현대무용 팀을 새로 기용했다. 연 감독은 “추상적인 개념을 몸으로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는 현대무용가들 덕분에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한 우리 영화만의 좀비가 완성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빌딩 보안팀 직원 ‘최현석’을 연기한 지창욱은 감염자를 연기한 배우들의 표현력을 언급했다. 그는 “영화 속 좀비의 눈을 이토록 유심히 바라본 것은 처음일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감염자들이 토해내는 흰색 점액질과 끈적이는 비주얼에 대해 연 감독은 “리서치 과정에서 개미가 페로몬으로 소통하며 집단지성을 발휘한다는 점이 흥미로워 감염자들 간의 연결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설정으로 점액질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가 집에서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모습에서도 힌트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AI가 인간 흉내… 현시대 불안 주목

개별성을 잃고 하나의 군집처럼 움직이는 ‘군체’의 좀비는 현대인의 집단화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연 감독은 앞서 초고속 정보 교류와 집단지성, AI 시대가 만들어낸 현대 사회의 불안에서 ‘군체’의 좀비를 착안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잡지 ‘버라이어티’는 ‘군체’에 대해 “AI와 집단적 사고가 인간의 개별성을 어떻게 침식하는지에 대한 현대적 불안을 좀비라는 소재로 영리하게 풀어냈다”고 평했다.

영화는 고립된 빌딩 안에 모인 다양한 인간 군상도 함께 비춘다. 소수의견을 대변하는 생명공학과 교수 ‘권세정'(전지현)은 정체불명 감염자들의 행동과 진화 패턴을 분석하며 생존자들의 탈출을 이끈다. ‘최현석’역의 지창욱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장애가 있는 누나 ‘최현희'(김신록)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좀비 떼에게 남편을 잃은 특별조사팀의 ‘공설희'(신현빈)는 혼란 속에서도 이성과 소신을 잃지 않은 채 사태 해결에 나선다. 반면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는 같은 위기 속에서도 상반된 선택을 보이고, 공권력을 상징하는 형사는 인간성보다 효율을 우선시하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

영화는 생존자와 감염자 두 집단의 대비를 통해 오락적 재미와 함께 사회적 메시지도 던진다.

연 감독은 “처음에 좀비는 원시적인 상태에서 시작해 급격하게 진화하는 반면 인간들은 문명적인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극한 상황 속에서 이기심 등으로 인해 퇴화한다”며 “이 과정을 통해 문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인간성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군체’는 속편 제작 대신 그래픽노블을 통해 이후의 세계를 확장해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게임 제작도 구상 중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