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초 선발 5인 144이닝·좋은 센터라인 구축
“지표만 보면 절대 이렇게 꺾일 팀 아니다”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 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롯데가 7대4로 승리 후 김태형 감독이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3년 안에 우승까지 바라본다고 말했었다. 약속을 못 지켰으니 실패다. 성적이 말해주는 것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만료되는 김태형 감독의 냉정한 자기 객관화처럼, 롯데 자이언츠의 2026시즌은 변명의 여지 없는 ‘실패’다. 2017년 정규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던 롯데는 올해까지 무려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조원우 전 감독 이후 양상문, 허문회, 래리 서튼, 그리고 ‘우승 청부사’ 김태형 감독마저 거쳤지만 사직벌의 가을은 잔인하리만치 차가웠다.
하지만 롯데의 한 해를 찬찬히 복기해 보면, 단순히 ‘실패한 꼴찌 후보’로 치부하며 고개를 숙일 팀이 결코 아니다. 지표와 경기 내용의 세부 지표를 들여다보면 롯데는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 나균안. 뉴스1
가장 억울한 쪽은 마운드다. 롯데는 엘빈 로드리게스(159⅔이닝), 나균안(149⅔이닝), 박세웅(147⅓이닝), 제러미 비슬리(147이닝), 김진욱(144⅓이닝)까지 5명의 선발이 모두 규정 이닝(144이닝)을 돌파했다. 2015년 10구단 체제 출범 이후 리그 역사상 최초의 진기록이다. 여기에 신인 박정민(9승 14홀드)의 발견과 전천후 소방수 최준용(15세이브)의 활약까지, 투수진의 뼈대는 리그 최상위권에 버금갔다.
야구의 척추인 ‘센터라인’ 구축도 눈부셨다. 포수 손성빈이 안방마님으로 우뚝 섰고, 유격수 전민재와 2루수 고승민이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내야를 다졌다. 중견수 황성빈은 55도루로 생애 첫 도루 타이틀을 품에 안았고, 한동희는 109경기 25홈런 타율 0.306으로 완벽하게 4번 타자의 위용을 되찾았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도 211안타의 레이예스가 중심 타선에 꽉 버티고 있다. 선발 야구가 되고 센터라인이 굳건한 팀이 9년째 가을야구를 못 가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2회초 롯데 손성빈이 솔로 홈런을 날린 후 기뻐하고 있다. 뉴스1
결국 발목을 잡은 것은 ‘뎁스(선수층)’와 시즌 초반의 외적 변수였다. 대만 전지훈련 도중 터진 주축 선수들의 징계로 시작부터 꼬였고, 베테랑 전준우, 노진혁, 유강남의 동반 타격 침체(2할대 초반)가 뼈아팠다. 투타의 지독한 엇박자가 계속됐다. 여기에 확실한 주전들의 뒤를 받쳐줄 선수층이 헐겁다 보니, 주축 타자들의 부진과 징계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고 만 것이다.
이제 그라운드의 시간은 끝나고 ‘프런트의 시간’이 열렸다. 뼈대는 어느정도 세워졌다. 이렇게 무너질 전력이 아님을 확인한 이상, 이제는 빈 곳을 채워줄 외부 수혈이 절실하다.
연합뉴스
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8회초 선두타자로 나온 롯데 황성빈이 삼성 장찬희의 10구를 때려 우중간 안타를 친 뒤 3루까지 파고들어 세이프 되고 있다. 뉴스1
김태형 감독의 재계약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롯데는 젊은 피의 성장과 성적을 동시에 쟁취할 새 사령탑을 물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프런트의 결단’이다. 2023년 유강남·한현희·노진혁 영입 이후 4년간 굳게 닫혀있던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의 지갑을 적재적소에 열어 헐거운 뎁스를 단숨에 채워야 한다.
9년의 긴 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사직구장을 채워준 팬들에게 구단이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아까운 뼈대에 확실한 살을 붙여줄 ‘화끈한 투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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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