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태 교수가 전하는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 /윤선태 /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야외 전시장 한쪽에 거대한 청동 물체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위풍당당한 크기와 화려한 문양, 장엄한 울림. 국보 중의 국보라고 할 수 있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다. 우리에게 ‘에밀레종’으로 더 친숙하지만, 종의 몸통에 새긴 글에 성덕대왕신종이라는 신라 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종을 언제,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제작을 책임졌던 이들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전란의 한가운데에서도 굳세게 살아남았다. 조선의 불교 탄압과 자연재해, 큰 화재마저도 비껴갔다. 1992년까지는 매년 ‘제야의 종’ 행사에서 타종이 이뤄졌고, 2025년까지도 안정적인 종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천 년이 넘는 아득한 세월을 묵직하게 버텨 온 신종 앞에 서면 절로 숙연해지고, “이렇게 살아남아 주어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로 출간된 ‘성덕대왕신종’은 이 위대한 예술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성덕대왕신종에는 당시의 시대적 소망과 신라의 기술, 장인의 감각, 백성들의 힘겨운 노동, 왕의 정치적 야망이 뒤엉켜 있다. 8세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약 100년간은 사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위기의 시기였다.
신라를 중심으로 서술한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이 시기를 신라가 가장 강성했던 전성기라며 특별히 ‘중대(中代)’로 구분한다. 하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오히려 무열왕 이후의 이 시기를 쇠퇴기인 하대와 하나로 묶어 내리막길을 뜻하는 ‘하고(下古)’로 평가한다.
왕권은 강했지만 귀족의 반발이 심해졌고, 자연재해와 전염병은 백성의 삶을 짓눌렀다. ‘삼국 통일’이라는 역사적 위업의 그림자가 피폐한 현실을 가렸다. 그런 격동의 시기에 경덕왕은 아버지 성덕왕(재위 702~737)을 기리기 위해 거대한 종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 종은 그의 생전에는 완성되지 못했고,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 즉위 7년(771) 12월 14일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완성된다.
성덕대왕신종에는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혼이 담겼다. 신라 장인들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종의 구조와 모양을 조정하고, 몸통 두께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얇아지게 만들어 종의 울림이 아주 멀리까지 가도록 설계했다. 무릎을 꿇고 향로를 받든 천인(天人)과 넝쿨처럼 뻗어 나간 화려한 꽃무늬를 아로새긴 섬세한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신라인의 신앙과 염원을 담은 메시지다.
우리는 이 종을 보며 흔히 “멋있다”, “엄청 크다”고 감탄한다. 에밀레종 전설도 떠올린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연 이 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단순히 소리를 내기 위한 물건을 넘어, 천 년 전 신라인들은 왜 이토록 큰 종을 만들고자 했을까?
이러한 의문은 국립경주박물관이 관람객의 투표로 선정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신라 보물 10가지’를 심도 있게 다룬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를 통해 명쾌하게 풀린다. 전·현직 학예사와 국내 최고 연구진이 집필한 이 시리즈는 유물의 발굴부터 최신 보존 과학 연구 성과까지, 그 속에 담긴 신라의 혼과 역사적 의미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생생하게 풀어낸다. 성덕대왕신종을 비롯해 신라의 숨결이 깃든 보물들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이 친절한 길잡이 속에, 처음 종을 만들었던 이들의 간절한 마음부터 우리에게 닿은 그 울림까지를 오롯이 담았다.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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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 천년을 살아낸 종소리에 얽힌 역사 이야기 [내책 톺아보기]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로 출간된 ‘성덕대왕신종’은 이 위대한 예술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