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 신뢰도 높여 투자 유치 목적
국제기준 맞게 수출통제체계 강화
재수출·환적·통과·이동까지 적용
코트라, 전략물자 판정 방식 주목
해당여부 사전 판정제 없는 상태
관계부처 공문도 법적 효력 없어
수출허가서 등 증빙 요구 대비해야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동남아시아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몰리는 대표 국가 중 하나인 베트남이 최근 전략물자수출통제제도를 강화하면서 현지에 진출해 수출을 하고 있는 관련 국내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전략물자는 평소에는 민간용으로 쓰이지만 유사시 군사적 용도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어 국가가 수출을 통제하는 대상으로 상품·소프트웨어·기술까지 모두 해당된다.
20일 현지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은 최근 미국 등 외국기업으로부터 인공지능(AI) 투자, 데이터센터 등 유치를 위해 전략물자수출통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특히 수출 뿐 아니라 재수출·환적·통과·이동까지 관리 범위를 넓히고 있어 현지 진출 기업들은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HS코드)만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의 구체적인 기술사양과 최종 용도까지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다.
베트남이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계를 정비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함께 반도체·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서다. 국제 기준에 맞는 수출통제체계를 구축하고 교역 신뢰도를 높여야만 서방의 첨단산업 투자 유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10월 ‘전략적 무역통제 시행령’을 제정한데 이어 올해부터는 관련 제도를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에따라 통제 대상 품목을 취급하는 기업들은 수출허가 등 추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사전 대응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재수출·환적·통과도 해당… “기술사양까지 확인을”
코트라와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관리원은 지난 17일 하노이 롯데센터에서 베트남 진출 기업 100여곳을 대상으로 ‘베트남 전략물자 수출통제 대응 세미나’를 열고 최신 제도를 공유했다.
수출통제 주무 부처 중 하나인 베트남 산업무역부의 부 민 탐 수출입국 과장은 “전략물자와 이중용도 품목에 대한 통제는 국제적 약속을 이행하고 베트남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수출 뿐 아니라 재수출·환적·통과·이동까지 적용 범위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자들은 베트남 수출통제에서 국내 기업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으로 전략물자 판정 방식을 꼽았다. 이재영 무역안보관리원 선임은 “베트남에서는 전략물자를 확인할 때 HS코드, 품목, 기술적 사양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셋 중 하나라도 일치하지 않으면 전략물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국가의 판정 방식과 다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HS코드에 속하더라도 실제 제품의 종류와 기술사양에 따라 통제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응오 쭝 히에우 베트남 과학기술부 IT산업국 실무관도 “기업은 HS코드와 품목 설명을 확인한 뒤 기술적 사양을 규정 기준과 대조해 통제 대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전 판정제도 없어…통관 전 미리 대응해야
베트남의 수출통제 체계는 산업무역부·과학기술부·건설부·보건부 등 4개 부처가 나눠 관리한다. 산업무역부는 전력·전자, 화학, 합금·금속 소재, 무인항공기(UAV) 등 10개 분야 54개 품목을, 과학기술부는 원자력·반도체·전자·컴퓨터 및 일부 통신·감시·감청 관련 품목을 담당한다. 항공·해운은 건설부, 생물 분야는 보건부가 맡는다.
부처별 세부 규정도 순차적으로 마련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지난 6월 6일 관련 시행규칙을 발표해 즉시 시행했고, 산업무역부는 7월 29일 시행규칙을 공포해 지난 1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건설부와 보건부의 세부 규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기업들이 현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자사 제품이 베트남 전략물자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국내에서는 수출기업이 전략물자 해당 여부를 사전에 판정받아 수출허가 필요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베트남에는 아직 이 같은 공식적인 사전 판정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관계 부처에 공문으로 문의해 규정에 근거한 회신을 받을 수는 있지만, 공식적인 행정절차나 법적 효력을 갖는 사전 판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통관 과정에서 수출허가서나 전략물자 비해당 증빙을 요구받을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장 질의에서는 선박·항공부품과 원자재 반송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선박 자체는 현재 통제 목록에 포함되지 않지만 잠수함 시스템 등 일부 품목은 관리 대상이다. 민항기 부품도 일부 품목이 시행령에 포함돼 있으나 세부 기준은 관련 시행규칙이 마련돼야 보다 명확한 판단이 가능할 전망이다.
수출가공기업(EPE)도 예외가 아니다. 가공 후 해외로 물품을 반출하는 경우 수출로 취급돼 통제 대상 품목이라면 허가가 필요하다. 니켈·티타늄 합금 등을 해외 공급업체에 반송하는 경우에도 수출에 해당할 수 있어 HS코드와 기술적 특성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현지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일 서울에서 베트남 산업무역부와 ‘제1차 한·베트남 수출통제 대화’를 개최하며 양국 간 협력 체계를 가동했다. 산업부 산하기관인 무역안보관리원은 내년 수출통제 담당관을 베트남 하노이에 파견해 현지 진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현지에서 직접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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