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XMT 메모리 반도체./출처=바이두,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의 급부상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주도해온 D램 시장에 중국 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다.
창신메모리는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이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 투자를 집중하는 사이 범용 D램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했다. 최근에는 첨단 D램과 HBM 시장 진출까지 준비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잠재적 경쟁자로 떠올랐다.
창신메모리의 성장과 함께 최근 ‘규제의 역설’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접근을 막기 위해 수출통제를 강화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기술 자립과 국산 공급망 구축을 자극했다는 주장과 함께다. 과거 한국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정착과 일본의 희토류 공급망 확장 등 유사 사례도 언급됐다.
미국이 막은 반도체, 중국의 ‘자력갱생’ 자극
미국은 2019년 화웨이 제재를 시작으로 중국이 첨단 반도체와 제조장비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2022년부터는 첨단 AI 반도체와 관련 제조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고 네덜란드와 일본도 일부 장비 통제에 동참했다.
수출통제는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늘렸다. 그러나 외국 기술에 계속 의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도 키웠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최첨단 공정보다 기존 장비로 생산할 수 있는 범용 반도체부터 시장을 넓혔다. 창신메모리도 DDR4 등 범용 D램 생산을 확대하며 기술과 생산 경험을 축적한 뒤 DDR5와 모바일용 D램, HBM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고 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지방정부 지원, 거대한 내수시장이 성장의 토대였다면 미국의 수출통제는 자립 속도를 높인 촉매가 됐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지난 3월 ‘동맹국들의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로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보고서는 2022년부터 미국과 동맹국들이 첨단 반도체 기술에 대해 시행한 수출 통제는 중국의 인공지능(AI) 및 고성능 칩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진행했고 제한적으로 목표 달성을 이뤘지만, 반대로 중국의 반도체 자립 추진에 속도를 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CSIS는 1년 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실제 중국의 집적회로 생산량은 수출 통제 조치 시행 이후 2022년 9.8% 감소했고 7나노미터(㎚) 이하 공정 칩 생산 능력을 사실상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예상 밖 효과를 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2014년부터 중국 정부가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그 동안 중국 기업들은 미국산 장비와 소재에 의존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미국의 반도체 규제 덕에 장비와 소재를 중국산으로 대체하면서 개발에 가속이 붙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한국 소부장 국산화 전환점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규제가 내부 경쟁력을 강화하는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한국도 공급망 규제가 산업 자립을 자극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하는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관리를 강화했고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도 제외했다.
당시 국내 반도체 업계는 핵심 소재 일부를 일본 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수출심사가 길어지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까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그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도 일본의 수출관리 강화로 한국 반도체 업체에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국내에선 ‘노재팬’ 운동이 활성화됐고 우리 기업은 공급망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소재 재고를 확보하는 동시에 중국과 유럽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국내 업체의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내놓고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투자를 지원하면서 일부 고순도 불화수소와 반도체 소재의 국내 생산이 확대됐고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졌다.
이후 일본은 2023년 관련 3개 품목의 수출관리를 이전 방식으로 되돌렸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존하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일본 역시 중국의 자원 통제를 계기로 공급망을 바꾼 경험이 있다.
2010년 센카쿠열도, 중국명으로는 댜오위다오 인근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충돌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 이에 중국은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와 반도체, 정밀기계, 방산제품 등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로 일본은 희토류 수입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제조업 전반이 공급 차질 위험에 노출된 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 이외 지역에서 공급처를 찾기 시작했다. 호주 희토류 기업에 투자하고 베트남·인도 등과 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과 폐제품 재활용에도 자금을 투입했다.
자체 자원 개발도 추진했다. 일본은 미나미토리시마 주변 배타적경제수역 심해에서 희토류가 포함된 진흙을 발견한 뒤 채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심 약 6000m 해저에서 희토류 함유 진흙을 끌어올리는 시험에 나섰다.
다만 경제성과 환경 문제를 검증해야 해 상업적 양산 단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2010년 중국의 공급 압박이 일본을 해외 광산 투자와 재활용, 심해 자원 개발로 움직이게 한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규제는 시간을 벌지만 경쟁자를 없애지 못한다
이처럼 규제의 이유는 제각각지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전문가들은 “앞선 세 사례 모두 규제가 곧바로 완전한 기술 자립이나 수입대체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공급 제한을 받게 된 각 국가들은 단기적으로는 공급 불안과 생산 차질을 겪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체 기술과 공급처를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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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