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석 동남아본부 특파원
“그 뉴스 보셨죠?”
한 동남아 국가의 정부 관계자로부터 지난 2월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 관계자는 해당 국가에서 차세대 ‘지한파’로 꼽히는 관료다. 그가 언급한 ‘그 뉴스’는 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 K팝 공연을 계기로 촉발된 한국 네티즌과 동남아 네티즌 간의 온라인 설전에 관한 보도였다. 표면적으로는 팬덤 간 충돌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을 향한 동남아의 복합적인 감정이 응축돼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현지에서는 한국이 문화적 교류나 사회적 기여보다 자원 확보와 수익 창출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한류 확산과 기업 진출로 존재감은 커졌지만 그에 걸맞은 체감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일부에서는 1970년대 일본이 동남아에서 ‘경제적 동물’로 비판받던 시기를 떠올린다는 다소 거친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본의 ‘후쿠다 독트린’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당시 일본은 급속한 경제 진출 속에서 현지 산업 육성보다 자국 기업의 이익에 치우쳤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반일 감정이 확산됐다. 이에 후쿠다 다케오 당시 총리는 1977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하며 경제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관계’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후 일본은 현재 아세안이 신뢰하는 국가 1위에 이름을 매년 올리고 있다.
물론 오늘날 한국을 1970년대 일본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동남아에서 생산기지 확대를 넘어 기술이전과 인재 양성, 사회공헌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정부 역시 공적개발원조(ODA)와 다양한 협력사업을 통해 관계를 넓혀왔다. 그러나 현지 기여와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각종 조사에서 한국은 아세안의 ‘주요 파트너’로는 꼽히지만 ‘최선의 파트너’를 묻는 질문에서는 미·중·일·유럽연합(EU)은 물론 인도와 호주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C·S·P 비전을 제시했다. 한국이 아세안의 조력자(Contributor), 도약대(Springboard), 파트너(Partner)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이 비전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아세안 현지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이번 사태는 대아세안 관계를 반추해볼 절호의 기회다.
한·아세안 관계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이길 기대한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