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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CEO의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김문경의 리더십테크](11)

[파이낸셜뉴스] 이제 ‘만약’의 문제가 아니다. 위기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2026년 3월 26일, OECD는 중간 경제전망을 통해 한국 경제에 짙은 경고음을 울렸다. 중동 전쟁 여파로 한국이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운 환경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한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치는 2.1%에서 1.7%로 0.4%포인트 하향됐고, 물가 상승률 전망은 1.8%에서 2.7%로 0.9%포인트 상향됐다.

주요 20개국 가운데 하향 폭이 가장 큰 수준에 속한다.

거시지표는 현장에서 더 거칠게 체감된다. 3월 23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17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브렌트유는 3월 한 달간 63% 급등해 선물시장 개설 이래 월간 최대 상승률을 경신했다. 3월 20일 배럴당 109달러를 넘기며 전년 동기 대비 81% 상승한 구간도 있었다.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구조, 수출로 먹고사는 구조에서 고환율과 고유가의 동반 상승은 수입 물가와 경상수지를 동시에 짓누른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다. 성장은 꺾이고 물가는 오르는, 리더에게 가장 까다로운 조합이다. 지난 칼럼에서 짚었던 AI FOMO가 ‘미래 불안’이었다면, 지금 CEO의 책상 위에 놓인 건 ‘오늘의 청구서’가 된 것이다.

위기의 진짜 위험은 숫자가 아니라 침묵이다

위기의 치명타는 지표가 아니라 조직의 침묵이다. 조직 내에서 의도적으로 말을 아끼는 직원 비율이 25~30%를 넘어서면 조직의 면역 체계가 무너진다. 이 지점부터는 나쁜 소식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실수가 은폐되며, 위기 신호를 놓친다.

경제 위기가 오면 이 침묵은 기하급수적으로 심해진다. CEO가 “상황이 심각하다”고만 말할 때, 직원들은 속으로 다른 질문을 한다. 내 일자리가 안전할까? 언제 구조조정이 올까? 지금 의견을 냈다가 화풀이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이런 공포는 입을 닫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CEO는 현장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현장은 리더의 진짜 의도를 알지 못한다. 투명성의 붕괴가 되어 버린다.

우리의 역사에서 다시금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현대자동차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었지만 이후 글로벌 완성차 기업으로 도약한 대표적 위기 돌파 사례로 평가받는다. 노사 갈등과 파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학술·언론 분석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지점은 상대적으로 높은 정보 공유와 내부 설득 노력이었다. 경영진이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방향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회사가 살아야 개인도 산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내면서 조직 내 공감대를 일정 수준 확보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같은 위기 속 일부 대기업은 “지켜보자”, “아직 알 수 없다”는 모호한 메시지를 반복하다가 뒤늦게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했고, 직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을 숨겼다”며 등을 돌렸다. 같은 위기, 다른 결말의 갈림길은 투명성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같은 구도가 반복됐다.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경영진은 마지막까지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내보냈다. 시장과 직원의 불신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2008년 9월 결국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사후에 공개된 내부 이메일과 회의록은 경영진이 리스크를 외면하거나 감췄다는 비판에 힘을 실었다. 반면 같은 시기 JP모건체이스는 공격적인 손실 인식과 자본 확충, 인수·합병 전략을 투명하게 공유하며 “어렵지만 준비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냈다. 위기 이후 자본시장과 인재 시장에서 이 회사가 ‘신뢰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라는 위상을 굳힌 배경이다. 위기는 기업을 죽이기도 하고,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CEO의 언어다.

위기의 CEO가 지켜야 할 3가지

그렇다면, 지금 CEO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복잡한 처방은 필요 없다. 핵심은 3가지다.

첫째, 있는 그대로 말해라.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실수는 ‘낙관적인 거짓’이다. 현장은 이미 환율과 원가 상승, 발주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 이때 CEO가 “괜찮다”고만 말하면, 조직은 리더가 현실을 모르거나 알면서 숨긴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침묵한다. 이 때 CEO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환율이 1,500원을 넘었고, 유가는 한 달 새 60% 넘게 올랐다. OECD는 올해 한국 성장률을 1.7%, 물가를 2.7%로 제시했다. 우리 사업은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고, 앞으로 3~6개월이 결정적이다.” 불편한 진실이 신뢰의 출발점이다. 타운홀이나 사내 방송에서 현재의 3대 리스크를 숫자와 함께 명시하고, 주간 단위로 환율·유가·발주량 같은 객관 지표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도 모르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조직의 신뢰는 올라간다.

둘째, 현장의 지혜를 끌어올려라. 위기의 돌파구는 CEO 혼자 찾을 수 없다. 현장의 데이터와 직관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세 가지를 묻겠다. 지금 당장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보이는 고객과 거래처의 변화는 무엇인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기회는 무엇인가?” 이 세가지 질문을 부서별 생존 전략 회의에 던지고, 2주에 한 번 구체적 실행 과제를 최소 하나씩 도출하게 하라. 익명 아이디어 채널도 함께 열어 둬야 한다. 중요한 건 채택된 의견을 낸 사람을 CEO가 직접 이름을 불러 인정하는 것이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는 제도가 아니라 이 경험으로 깨진다.

셋째, 신뢰눈 꾸준히 쌓아야 복구된다. 위기가 길어지면 직원들은 “리더는 결국 자기만 챙긴다”는 의심에 빠지기 쉽다. 이를 막으려면 정해진 주기로 만나야 한다. 주 1회 30분짜리 CEO 타운홀을 정례화하는 것도 좋다. 위임이 아니라 CEO 본인이 진행해야 한다. 이번 주 경제 뉴스와 우리 회사의 대응을 간결히 공유하고, 불편한 질문에도 피하지 않고 답하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 전에는 왜 이 결정을 하려는지, 어떤 대안이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결정 이후에는 결과를 다시 점검해 피드백 하는 루프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월 1회 5문항 이내의 ‘조직 신뢰 펄스 서베이(Organizational Trust Pulse Survey)’를 익명으로 진행한다. “CEO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느낀다”, “내 의견이 의사결정에 고려될 것 같다”, “위기 속에서도 회사의 미래를 신뢰한다” 같은 문항이면 충분하다. 평균 3점 이하 항목은 레드 플래그다.

경제 위기는 조직의 진짜 상태를 드러낸다. 평시에는 좋은 실적과 화려한 메시지로 많은 것을 가릴 수 있다. 위기 때는 그 포장이 한 겹씩 벗겨진다.

진실을 말하는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가, 신뢰를 일관되게 복구하는가. 이 3가지 질문 앞에서 리더의 실력이 드러난다. 침묵이 깊어질수록, 리더십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인다.

경제 위기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다.

/김문경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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