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전기본 전략의 실현 가능성과 과제
속도·부지·재원 세 가지 벽 넘어야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정부는 2026~2040년을 계획 기간으로 하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12차 전기본) 수립에 착수했다. 핵심 방향은 신규 원전 건설과 재생에너지 대폭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윤석열 정부의 원전 중심 노선과 다른 ‘제 3의 방식’이다. 두 정책을 병행하는 전략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지가 이번 전기본의 핵심 쟁점이다.
새울2호기(가압경수로형, 140만㎾급).뉴시스
원전 건설 재개 속 절차 지연·지역 갈등 우려
25일 기후에너지부 등에 따르면 12차 전기본은 크게 △신규원전 건설△재생에너지 확대 △탈석탄이라는 세 방향으로 구성된다.
우선 11차 전기본에 포함됐던 신규 대형 원전 2기(총 2.8GW)와 SMR 1기를 2037~2038년 준공 목표로 건설한다. 올해 1월 26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공식 확정을 발표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지 공모를 시작하고, 5~6개월 평가 후 부지를 선정해 2030년대 초 건설 허가를 받는 일정이다.
재생에너지는 2030년까지 현재 36GW에서 100GW로 확대한다.
11차 전기본이 2038년까지 121.9GW를 목표로 했던 것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 5년 안에 64GW를 추가하는 셈으로, 매년 약 13GW씩 설치해야 달성 가능한 수치다.
2040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한다. 현재 국내 발전량의 약 30%를 담당하는 석탄을 전면 퇴출하고, 그 자리를 재생에너지와 ESS로 채운다는 구상이다.
당초 이재명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11차 전기본에 담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두고, “되지도 않을 것이니 통과된 것”이라고 말했다. “가능한 부지가 있고 안정성이 확보된다면 원전 신규 건설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국민 여론조사에서응답자의 89.5%가 원전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69.6%는 신규 원전을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이 원한다”는 민주적 명분에 입장을 선회할 수 밖에 없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확대로 2040년 최대 전력 수요가 131.8~138.2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보다 약 30~38GW 더 많은 규모다.
다만 원전 건설 계획에는 일정과 부지 선정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원전은 건설 결정부터 준공까지 통상 15년 가량이 걸린다. 12차 전기본 확정이 2026년 말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2037~2038년 준공은 이미 일정이 빠듯하다. 절차상 단 한 번의 지연도 허용하기 어렵다.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은 지역 갈등을 수반한다. 방폐장 선정 과정, 밀양 송전탑 사태 등 에너지 인프라를 둘러싼 분쟁은 사업 일정을 수년씩 지연시킨 사례가 많다. 현재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선로 건설에 주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재생에너지 100GW 목표의 현실성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를 달성하려면 매년 약 13GW씩 설비를 추가해야 한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태양광·풍력 합산 약 6%로, 글로벌 평균(12%)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수년간 연간 설치 실적이 5~7GW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현재 속도를 두 배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
에너지원별로 보면 태양광이 주축이다. 정부는 산업단지 지붕형 태양광, 영농형 태양광, 수상 태양광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태양광 설치는 이격거리 규제가 미국보다 5~10배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어 입지 확보 자체가 장애물이다.
계통 수용력도 병목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지는 간헐성 문제가 있다. 이미 제주에서는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가 일상화됐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수요를 웃도는 시간대에 전력을 저장하거나 흘려보낼 방법이 없으면 오히려 출력을 줄여야 하는 역설이 생긴다. 본토에서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같은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정부는 ESS(에너지저장장치)와 가상발전소(VPP)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2026년부터 AI 기반 분산 전력망 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며 대규모 ESS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ESS는 통상 수 시간의 저장에 적합하고, 수일간 흐린 날씨나 무풍 상태가 이어지는 상황에 대응하는 데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 한계가 있다.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완전히 해소하려면 백업 전원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의미다.
안산 시화호에 설치돼 345kV 신시흥 영흥 송전선로 철탑. 뉴시스
전력망 확충·재원조달 해결해야
이번 12차 전기본에서 이전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전력망(계통) 혁신을 전기본 수립 단계부터 핵심 의제로 다룬다는 것이다. 종전에는 전기본이 확정된 뒤 한전이 이에 맞춰 송변전 계획을 짜는 방식이었다. 이번엔 총괄위 산하에 계통혁신 소위원회를 처음 신설했다.
배경은 명확하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대규모로 확대하려면 전력망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남부·서해안에 집중되는데 수요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으면 설비를 늘려도 실제 활용에 한계가 생긴다.
원전 경직성과 재생에너지 간헐성이 함께 커지는 환경에서는 수요 측 관리도 중요해진다. 정부는 AI 기반 수요 예측, 수요 반응(DR) 확대, 제주에서 검증된 재생에너지 도매시장 입찰제의 전국 확대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전의 현재 총부채는 205조 원이다. 올해 3분기까지 11조 5,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부채 감축은 더디다. 신규 원전 건설,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확충을 동시에 진행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그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그러나 2026년 1분기 전기요금은 동결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물가 안정과 정치적 부담을 고려한 결과다. 요금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한전 재무는 악화되고, 올리면 민생과 산업 경쟁력에 부담이 된다. 이 구조적 딜레마는 12차 전기본이 확정된 뒤에도 이어질 과제다.
업계 관계자는 “12차 전기본의 성패는 원전 부지 선정과 재생에너지 인허가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할 지, 지역 갈등을 합의로 해결할 수 있을 지, 전기요금 현실화를 포함한 재원 조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에 달렸다”며 “이 세 가지 없이는 계획이 아무리 잘 짜여도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에너지의 생산 방식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거나, 반대로 기후나 환경의 변화가 에너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줍니다.
[이유범의 에코&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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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