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클 J 케이시 MIT 디지털통화이니셔티브 수석고문 단일국가 통화공급 지배는 통화 질서 파괴 韓 등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의존도 낮춰야 외국 스테이블코인 국내 활동 제한도 필요 디지털자산·AI 결합으로 금융구조 바뀌어 중앙銀 결제·정산 인프라도 민간으로 이동 금융기관 역할도 자산운용 중심으로 재편
“스테이블코인의 달러화는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위험이다. 단일 국가가 통화 공급을 지배하는 구조는 매우 위험한 의존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디지털 금융 전문가인 마이클 J 케이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미디어랩 산하 디지털통화이니셔티브(DCI) 수석고문(사진)은 14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는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 국가의 대응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의존도를 낮추고, 원화 기반의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케이시는 파이낸셜뉴스가 오는 22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주최하는 ‘2026 FIND’에서 ‘스테이블코인과 화폐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다.
그는 디지털 자산과 인공지능(AI)이 결합되면서 금융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본은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이동하고, 결제·정산 인프라도 중앙은행에서 민간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금융기관의 역할 재편도 불가피하다고 봤다. 단순 중개 기능은 약화되고 자산운용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며, 디지털 자산과 온체인 금융 확산으로 기존 역할은 점차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은 단순히 거래 속도를 높이는 수준을 넘어 자본이동의 경로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변화가 기존 금융시스템의 자본배분 방식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대부분의 전통 금융기관은 디지털 자산을 고위험·투기성이 강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규모는 작지만 성장 중인 일부 헤지펀드와 고위험 선호 기관들은 이더리움과 같은 지분증명(PoS) 블록체인의 검증인으로 참여하며 전략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스테이킹 보상을 일종의 고정수익에 가까운 수익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허가형(permissionless) 블록체인이 ‘에이전틱 AI(스스로 판단하고 행동까지 하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인식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본이동 방향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자산은 전통 금융기관과 기존 산업을 넘어 AI 기반 벤처로 자금이 이동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에이전틱 AI 환경에서는 토큰화된 실물자산이 글로벌 가치 이동의 기본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에이전트들은 증권거래소 등 기존 자본시장 구조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결제는 탈중앙화된 토큰으로 이뤄지고, 자산과 재화·서비스는 디지털 형태로 표현되는 실시간 거래구조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기존 국제 통화질서를 강화하는 흐름인가.
▲초기 단계에서는 이런 평가가 일정 부분 타당하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서 달러 중심의 기존 국제 통화질서가 오히려 강화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글로벌 경제에는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어, 이런 흐름을 되돌릴 가능성도 있다. 먼저 정치적 요인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달러 패권의 기반으로 여겨졌던 브레튼우즈 2.0 체제의 틀을 흔들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경제패권에 대한 정치적 저항도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더 커지고 있다. 또 하나는 AI다. 에이전틱 AI 경제가 스테이블코인을 기본 수단으로 삼을지, 비트코인이나 토큰화된 자산 또는 법정통화와 결합된 바스켓형 토큰을 선택할지는 불확실하다. 유동성과 안정성, 정치적 리스크 측면에서 현재로서는 달러가 가장 유리하다. 그러나 이른바 ‘지능형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경우 달러 중심 구조 자체가 비효율적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선택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결제·정산 인프라의 주도권이 중앙은행이나 은행에서 민간 플랫폼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이는 중앙은행을 최종 대부자로 의지하기 어렵게 된다는 의미다. 은행이 예금의 일부만 보유하고, 나머지를 대출로 운용하는 ‘부분지급준비제’에서 맡긴 자금을 거의 그대로 보관하는 ‘완전지급준비’에 가까운 스테이블코인 중심 구조로 이동하면서 중앙은행의 개입 필요성 자체는 줄어든다. 기업의 급여 지급과 일상 결제, 예금 등이 직접적으로 보호되면서 ‘구조적’ 실패를 막기 위한 투자자 구제 필요성도 점차 감소할 수 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전후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문제를 키웠던 도덕적 해이가 반복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이 경우 위기 대응과 관련 중앙은행에 집중됐던 역할 일부가 정치권으로 이동할 수 있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와 민간 스테이블코인은 기능적으로 유사한 영역을 겨냥하고 있다. 향후 두 시스템의 공존 가능성은.
▲전반적으로 CBDC는 스테이블코인에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폐쇄형 결제 원장은 효율성과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실시간 결제와 상호운용성을 구현하려면 블록체인 기반의 개방형 인프라가 사실상 필수다. 다만 단기간에 일방적 전환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들은 각기 다른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는 스테이블코인을 수용하거나 개방형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방향을 택할 수 있다. 통화정책 통제력 약화를 우려하는 경우 CBDC 도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은행 규제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 자산과 온체인 금융이 확산될 경우 기존 금융기관은 단순 중개자 역할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금융기관의 역할은.
▲통합 자산운용 서비스가 계속해서 금융기관에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일부 자산운용 서비스는 탈중앙화 자율조직(DAO)과 유사한 구조를 채택, 기존 운용사에 준하는 규모로 성장할 수도 있다. 은행이 예금의 일부만 보유하고 대출로 운용하는 ‘부분지급준비제’가 약화되면서 신용공급에 공백이 생길 경우 금융기관은 예금을 수익성 높은 증권형 계좌로 전환, 기업·부동산·개인 대출 등으로 자금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디파이(DeFi·은행 없이 금융거래를 하는 시스템)는 여러 이용자의 자금을 한데 모아두고 필요한 곳에 자동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구조로 발전할 것이다. 이 경우 금융기관이 저축과 투자 사이에서 수행해온 전통적인 중개 역할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금융의 자문 역할도 변화가 예상된다. 고액자산가 대상의 프리미엄 자문서비스는 유지되겠지만 개인의 투자판단은 점차 AI에 의존할 것이다.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 국가는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자산전략을 설계하는 데 있어 ‘글로벌 통화(달러 기반)’에 편입되는 전략과 ‘자국 통화 기반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달러화는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특정 국가가 글로벌 통화 공급을 사실상 지배하는 구조가 형성될 경우 경제 전반이 해당 국가에 종속되는 불균형이 심화된다. 특히 AI 시대에는 화폐가 프로그래머블 도구로 전환되면서 이런 위험이 더 커진다. 특정 국가가 디지털 및 통화 권력을 독점할 경우 국제적 의존 구조가 고착될 수 있는 의미다. 따라서 현시점에서는 각국이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육성하는 전략이 더 현실적이다. 아울러 외국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활용을 일부 제한하거나, 은행 규제를 통해 국내 경제활동이 자국 통화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유도할 필요도 있다.
―한국이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자산을 금융 인프라로 도입할 경우 자본유출, 통화주권 약화, 금융 안정성 등 다양한 리스크가 제기되는데.
▲한국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전제로 원화 담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둘러싼 민간 경쟁구조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엄격한 준비금 관리체계를 기반으로 한 규제 틀을 우선 구축해야 한다. 부분지급준비제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고, 사실상 완전지급준비에 가까운 구조로 전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은행 수준의 라이선스를 부여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타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도매 거래환경에 대응해 저비용·고효율의 국경 간 결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와 다자기구, 글로벌 기술기업과의 협력도 병행돼야 한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