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회사 업무, 밤에는 미국 주식 ‘투잡’
새벽까지 앱 보다 출근해선 업무 저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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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미국 증시를 보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미국 정규장은 한국 시각으로 밤 10시30분에 시작해 다음 날 새벽 5시에 끝난다. 해외 주식 투자가 일상화되면서 퇴근 뒤 계좌를 확인하는 시간이 또 하나의 일상처럼 굳어졌고, 이 때문에 수면 부족과 업무 집중력 저하를 호소하는 직장인도 나오고 있다.
밤 10시30분, 다시 켜지는 주식 앱
30대 직장인 A씨는 퇴근 뒤 저녁을 먹고 나면 미국 주식 앱을 켠다. 처음에는 장 초반만 보고 자려고 했지만, 실적 발표나 주가 급등락이 있는 날에는 새벽 1~2시까지 화면을 보게 된다고 했다.
A씨는 “회사 일은 끝났는데 밤에 또 출근하는 느낌”이라며 “엔비디아나 테슬라가 움직이면 안 보고 자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날 회의 때 멍한 날도 있는데, 손실이 난 날보다 밤새 본 날이 더 피곤하다”고 토로했다.
미국 증시 시간은 국내 직장인에게 애매하다.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 정규 거래 시간은 미국 동부시간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다. 미국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기간에는 한국시간으로 밤 10시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거래가 이어진다.
장 초반만 보겠다고 시작해도 주요 종목 변동이 커지면 쉽게 끊기 어렵다. 장 마감까지 보지 않더라도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 시세, 환율, 국내 장 영향까지 확인하다 보면 수면 시간이 밀린다.
서학개미 계좌 관리…이미 일부 직장인 일상
해외주식은 더 이상 일부 투자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국내 투자자의 외화증권 보관금액은 1844억5000만달러였다. 이 가운데 외화주식은 1360억3000만달러, 외화채권은 484억2000만달러로 집계됐다.
특히 미국 시장 비중이 컸다. 전체 외화증권 보관금액 중 미국 비중은 78.7%였다. 외화주식 보관금액 상위 종목도 테슬라, 엔비디아, 팔란티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순으로 모두 미국 주식이었다. 해외주식 보유가 일상화되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생활 리듬도 미국 증시 시간에 맞춰지는 경우가 생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 B씨는 “국내장은 일하는 시간이라 제대로 못 본다”며 “오히려 미국장은 퇴근 뒤라 더 오래 보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끔은 주식이 부업인지, 부업보다 더 시간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익보다 먼저 줄어드는 잠
밤 시간 투자가 길어지면 다음 날 업무에도 영향을 준다. 40대 직장인 C씨는 미국장 마감까지 본 다음 날 오전에는 커피를 여러 잔 마신다고 고백했다. 그는 “수익이 나면 기분이 좋아서 잠이 안 오고, 손실이 나면 복구 생각 때문에 또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직장인 피로는 이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202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자의 수면 시간은 2019년 7시간58분에서 2024년 7시간52분으로 줄었다. 취업자의 84.3%는 평소 피곤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물론 미국장 투자 자체가 피로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퇴근 뒤 쉬어야 할 시간이 다시 시세 확인과 매매 판단으로 채워지면 회복 시간은 줄어든다. 직장 일이 끝난 뒤에도 손실 복구, 실적 발표, 환율, 금리 뉴스를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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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알림을 끄지 못하는 이유
밤샘 투자를 줄이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미국 주식은 국내 장이 닫힌 뒤 움직인다. 특히 대형 기술주 실적 발표나 미국 물가 지표, 연방준비제도 발언은 한국시간 밤이나 새벽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 주가가 크게 움직이면 투자자는 알림을 끄기 어렵다.
증권사 앱의 실시간 알림도 영향을 준다. 목표가 도달, 급등락, 환율 변동 알림이 반복되면 쉬는 시간에도 계좌가 눈에 들어온다. 단기 매매를 하는 투자자일수록 장 초반 움직임을 놓치면 손해를 본다고 느끼기 쉽다.
전문가들은 해외주식 투자에서도 매매 기준뿐 아니라 시간을 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장 초반 30분만 확인하거나, 예약 주문과 가격 알림 범위를 좁히는 식이다. 모든 변동을 실시간으로 보려 하면 투자 판단보다 피로가 먼저 쌓일 수 있다.
직장인 A씨는 최근 미국장 알림을 줄였다. 실적 발표일이 아니면 밤 12시 이후에는 앱을 보지 않기로 했다.
그는 “계좌를 덜 본다고 손실이 바로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다음 날 회사에서 버티는 건 조금 나아졌다”며 “투자도 결국 월급 받는 생활 안에서 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