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이지만, 땀방울을 흘리며 한 뼘씩 자라나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내 삶의 가장 눈부신 흑자를 발견하는 중년 부부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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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수요일 밤 10시. 일주일의 절반을 넘어온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하지만 씻고 나와 소파에 기대앉은 4050 가장의 입가에는 며칠 전 주말을 떠올리면 묘한 미소가 번진다.
주말 내내 뙤약볕 아래서 7살 아들을 데리고 나간 축구장. 7살 아이에게 끈기 있게 기본기를 가르치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며칠 전 아이가 기적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공을 몰고 가며 늘 땅만 보던 녀석이, 어느 순간 고개를 번쩍 들고 아빠의 발을 아프게 할만큼의 대포알 슈팅을 날린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만원 지하철의 피로도, 마음대로 풀리지 않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마법처럼 증발해 버렸다.
우리는 4050 중년의 삶을 흔히 ‘자아 고갈’이나 ‘상실’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하지만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이 시기는 인간의 생애 중 가장 이타적이고 위대한 기쁨을 누리는 ‘생산성’의 단계다.
◇ 에릭슨이 말하는 ‘생산성’: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벅찬 환희
에릭슨은 중년기의 성인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오직 나 자신에게만 쏟는 ‘침체’를 넘어,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가르치며 헌신하는 과정에서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다.
이는 단순한 이론을 넘어 객관적인 수치로도 증명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이 진행한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 관련 조사에 따르면, 40대 기혼 남녀가 꼽은 ‘삶에서 가장 의미를 느끼는 순간’의 1위는 압도적으로 ‘자녀의 성장과 성취(약 71.4%)’였다. 경제적 안정이나 직장에서의 개인적 성공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4050 가장들이 무릎이 욱신거려도 주말마다 운동장으로 나가 아이와 땀을 흘리는 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서툰 드리블을 하던 아이가 끈기 있게 체력을 기르고 마침내 아빠와 눈을 맞추며 공을 차는 그 모든 과정은, 한 생명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가장 위대한 ‘생산적 활동’이다.
내 주식 계좌의 수익률은 마이너스일지 몰라도, 아이의 맑은 눈망울 속에서 매일매일 우상향하는 성장의 그래프를 목격할 때 가장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 완벽한 태그매치, 부부가 만들어가는 가장 눈부신 팀플레이
이 벅찬 기쁨은 부부라는 단단한 팀플레이가 있기에 가능하다.
복잡하고 세심한 학업과 교육은 아내가 전담하여 아이의 이성을 채워준다면, 아빠는 거친 운동장에서 아이와 몸으로 부딪히며 체력과 끈기, 그리고 동료애를 가르친다.
서로의 강점을 살려 아이의 성장을 입체적으로 지원하는 이 역할 분담은, 20대 시절의 불타는 로맨스보다 훨씬 더 깊고 견고한 전우애이자 사랑의 완성형이다.
“공부는 엄마한테 맡기고, 아빠랑은 체력부터 기르자”며 웃을 수 있는 여유. 그것이야말로 치열한 세상을 함께 헤쳐 온 중년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 같은 넉넉함이다.
◇ 고단한 수요일 밤, 당신은 이미 가장 성공한 투자자다
수요일 밤. 책상 위에 놓인 미지근한 생수 한 잔을 마시며 거실 한쪽에 뒹구는 작은 축구공을 가만히 바라본다.
비록 내 이름으로 된 빛나는 트로피나 수십억의 자산은 아직 없을지언정, 나를 향해 고개를 들고 힘껏 공을 차주며 웃는 아이가 있고, 그 여정을 함께 지켜봐 주는 아내가 있다.
팍팍한 세상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장 확실한 ‘우량주’를 키워내고 있는 당신. 오늘 밤만큼은 고단한 어깨를 펴고 활짝 웃어도 좋다. 당신은 이미 인생이라는 그라운드에서 가장 눈부신 승리를 거두고 있으니까.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