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끝] 투자 실패 후 흔들린 ‘정신건강’
“거짓말 하거나 피하거나” 가족·연인 관계까지 타격
상환일 쫓기는 청년들 “돈보다 생활이 문제였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사진=챗GPT
투자 실패의 여파는 계좌 밖으로도 번집니다. 손실을 가족과 연인에게 숨기고, 대출 상환에 쫓기며,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멀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한방에 빠진 청년들’ 마지막회는 깡통 계좌 이후 청년들의 일상에 남는 문제를 전합니다.
[파이낸셜뉴스]
#. 30대 직장인 A씨는 투자 손실을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월급 일부만 넣었지만, 손실을 만회하려고 대출까지 사용했다. 계좌 잔고가 줄어든 뒤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줄였고, 연인에게도 카드값이 늘어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증권 애플리케이션(앱)을 지웠다가 다시 설치했다. 손실을 확인하는 일이 괴로웠지만, 보지 않으면 더 불안했다. 퇴근 뒤에는 종목 게시판을 읽었고, 주말에는 다음 주 반등 가능성을 검색했다. 투자 실패는 계좌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A씨는 “돈을 잃은 것보다 말할 사람이 없어진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가족에게는 걱정을 끼칠까 말하지 못했고, 친구에게는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다. 연인에게는 결혼 준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손실 규모를 숨겼다.
계좌 손실 스트레스…주변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악순환
청년 투자 실패는 손실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원금 손실보다 오래 남는 것은 빚을 동반한 손실, 가족에게 숨긴 손실, 관계가 끊긴 뒤에도 남는 상환 부담이다. 투자 실패가 반복되면 돈 문제는 일상과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20대 직장인 B씨는 코인과 해외주식 손실을 본 뒤 가족 모임을 피했다. 부모가 결혼자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대답을 미뤘다. 손실을 말하면 “왜 그런 투자를 했느냐”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그는
“돈 문제보다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무서웠다”
고 했다.
손실을 숨기는 시간은 생활을 바꾼다. 약속을 줄이고, 카드 결제를 미루고, 월급날마다 상환액을 먼저 계산한다. 주가가 오르면 안도하고, 떨어지면 하루 전체가 무거워진다. 겉으로는 직장 생활을 이어가지만, 실제 하루는 계좌와 대출 상환일에 맞춰 움직인다.
30대 직장인 C씨는 손실 이후 수면 시간이 줄었다. 밤에는 미국 주식 시세를 확인했고, 아침에는 국내장 뉴스를 봤다. 그는 “잠을 안 자도 해결되는 게 없는데 안 보면 더 불안했다”고 말했다. 손실을 만회하려는 시간이 회복 시간을 밀어냈다.
투자 손실 뒤 남은 빚과 번아웃
청년층은 이미 부채와 생활비 부담을 함께 안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2025년 3월 발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 개인의 평균 부채는 1637만원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최근 1년 동안 번아웃을 경험한 청년은 32.2%였다.
번아웃 이유로는 진로 불안이 39.1%로 가장 많았다. 업무 과중은 18.4%, 일에 대한 회의감은 15.6%, 일과 삶의 불균형은 11.6%였다. 우울증상 유병률은 8.8%였고, 여성은 10.7%, 남성은 7.2%였다.
투자 손실이 곧바로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채와 손실, 고립이 함께 쌓이면 부담은 커진다. 특히 손실을 가족이나 주변에 말하지 못하는 경우 문제 해결은 늦어진다. 투자 실패는 숫자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계와 생활 리듬까지 흔들 수 있다.
B씨는 손실 이후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출 이자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친구들에게는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투자 손실을 메우는 시간이었다. 주말 수입이 생겼지만 쉴 시간은 줄었다.
카드론, 마이너스통장으로 이어지는 고통
투자 손실은 계좌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여윳돈으로 시작한 투자가 신용대출이나 카드론, 마이너스통장으로 이어지면 손실 뒤에는 상환일이 남는다. 종목을 팔아도 대출 이자는 빠져나가고, 손실을 숨긴 기간이 길수록 가족이나 연인에게 설명해야 할 금액도 커진다.
A씨도 처음에는 손실을 투자 실패로만 생각했다. 주가가 다시 오르면 해결될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손실 종목을 붙잡는 동안 생활비 계좌가 먼저 비었다. 카드값 결제일이 다가오면 보유 종목을 팔지, 단기 대출을 받을지 고민했다. 수익률보다 이자 납입일을 먼저 확인하는 날이 늘었다.
청년층의 부채 부담은 정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 개인의 평균 소득은 2625만원, 평균 부채는 1637만원, 평균 재산은 5012만원이었다. 청년 가구의 월평균 생활비는 213만원으로 집계됐다.
부채의 상당 부분은 주거와 관련돼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청년 개인 평균 부채 1637만원 가운데 주택 관련 부채는 1166만원으로 71.2%를 차지했다. 청년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한 정책 지원도 주거 정책이 45.7%로 가장 많았다. 주거 정책 안에서는 주택구입자금대출 31.3%, 전세자금대출 25.0%, 월세 등 주거비 지원 20.7% 순이었다.
투자 손실로 생긴 빚만 따로 집계한 수치는 아니지만, 청년층의 부채 부담은 주거비와 생활비 압박 속에서 이미 커져 있다. 여기에 투자 손실과 대출 이자가 더해지면 계좌 손실은 생활비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손실을 만회하려고 다시 돈을 넣는 과정에서 빚의 성격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자산을 늘리기 위한 돈이었지만, 나중에는 손실을 버티기 위한 돈
이 된다.
AI로 생성한 인포그래픽
정신건강 지표도 가볍지 않다. 국무조정실 조사에서 청년의 우울증상 유병률은 8.8%였다. 최근 1년간 극단적 선택 생각 경험은 2.9%, 번아웃 경험은 32.2%로 집계됐다.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 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한 청년은 6.3%였고, 상담을 받지 못한 이유로는 비용 부담이 38.6%로 가장 많았다.
빚이 연체로 넘어가면 채무조정 제도를 찾는 단계가 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6월 발간한 ‘금융취약계층 지원 채무조정제도 운영 평가’는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채무 부담에 고물가와 고금리,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금융채무 연체자와 금융권 부실채권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규 장기연체자는 2021년 18만명 수준에서 2025년 30만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청년층 관련 대목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은행 자료를 인용해 고위험가구 가운데 청년층 비중이 2020년 22.6%에서 2025년 34.9%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고위험가구는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고 자산을 팔아도 부채 상환이 어려운 가구를 뜻한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소득과 자산 축적도가 낮은 20~30대에서 주택 구입, 주식투자 등을 위한 부채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 특례에서도 청년층 부담이 나타났다. 2025년 기준 ‘미취업청년·대학(원)생’ 특례 적용 인원은 1만1723명으로 특례 대상 가운데 가장 많았다. 서울회생법원 개인회생 사건에서 3년 미만 변제기간을 적용받은 사유 중 30세 미만 청년 비율도 2024년 64.5%였다.
한편 A씨는 최근 손실 종목 일부를 정리했다. 원금을 모두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더 버티기 위해 빚을 늘리지는 않기로 했다. 가족에게도 손실 일부를 털어놨다. 그는
“주식 앱을 지운다고 카드값이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며 “다시 투자하더라도 빚내서 버티는 방식은 안 하려고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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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