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장릉 석물의 과학적 조사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파이낸셜뉴스]
“묘호는 단종이라 하니, 예를 지키고 의를 잡음을 ‘단'(端)이라 한다. 능호는 장릉이라 하였다.”
(숙종실록 1698년 기록 중)
조선의 제6대 임금인 단종(재위 1452∼1455)은 왕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정통성이 있는 왕으로 여겨졌으나, 3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 한 계획이 발각되면서 선대 왕이 아닌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됐고 강원도 영월에 유배돼 1457년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비운의 삶을 마친 지 200여 년이 지나 복위된 단종의 무덤은 어떻게 왕릉으로 조성했을까.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영월 장릉의 주요 석물을 만드는 데 쓰인 석재의 산지를 조사한 결과, 충북 제천 송학산 일대로 확인됐다”고 19일 밝혔다.
연구원에 따르면 영월 장릉은 기존의 노산대군묘를 왕릉 형식에 맞게 정비했다.
1698년 9월부터 1699년 6월까지 단종 복위와 장릉 조성 과정을 기록한 ‘단종장릉봉릉도감의궤'(端宗莊陵封陵都監儀軌)에는 그 과정이 남아있다.
장릉에는 무덤 주인의 혼이 노니는 공간이라고 여긴 혼유석(魂遊石), 봉분 앞에 위치한 네모난 형태의 장명등(長明燈), 돌로 만들어 세워둔 말 등이 있다.
의궤 기록은 ‘선조(재위 1567∼1608) 대에 설치한 문석인 등은 재가공해 썼으며 혼유석, 장명등, 석마, 석양, 석호 각 1쌍은 새롭게 제작했다’고 전한다.
연구원이 석물을 조사한 결과, 모두 흑운모 화강암으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흑운모 화강암은 석영과 장석류를 주성분으로 하며 단단하고 내구성이 강한 편이라 예부터 석탑, 불상, 비석 등을 만들 때 많이 쓰였다.
영월 장릉의 경우, 능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석재를 근처에서 확보해야 했는데 의궤 기록에서는 당시 영월에서 적합한 석재를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대안으로 선정된 채석지는 제천 북면 정암 일대였다.
연구원은 옛 지도와 지명, 행정 기록 등을 거쳐 1914년 당시 제천군 북면 지역이 송학면에 편입된 사실을 확인했으며 송학산에서 채석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연구원 측은 “송학면 시곡리에 위치한 송학산은 과거 8개의 화강암 채석장이 운영되었을 만큼 양질의 화강암이 산출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송학산 일대에서 확인되는 암석을 조사한 결과, 영월 장릉 앞 주요 석조물과 같은 흑운모 화강암이 확인됐다.
의궤에는 왕릉과 석재로 사용할 돌을 캐낸 곳까지 거리가 약 60리(약 24㎞)로 기록돼 있는데 영월 장릉과 송학산 간 거리도 대체로 부합한다고 연구원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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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