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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검사’에 속아 건넨 2억원…백화점 상품권으로 바꿔 넘긴 60대 전달책[사기꾼들]

상품권 구매액 0.3% 보수로 수령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

서울남부지법, 징역 1년 6개월 선고

“보이스피싱 범죄 인식 없었다” 주장 배척

뉴스1

[파이낸셜뉴스] 중국 등에 거점을 둔 채 한국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일삼던 보이스피싱 조직은 지난해 8월 27일 피해자 임모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직은 금융감독원 직원과 검사를 사칭하며 “당신 명의가 도용돼 범죄에 이용됐다. 자산 보호를 해야 하니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수표로 인출해 직원에게 전달하라”고 거짓말했다.

이에 속은 임씨는 같은 달 28일 경기 광명 한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조직의 현금수거책에게 1억원짜리 수표 두 장을 전달했다.

김모씨(60)는 이튿날 서울 강남구 한 지하철역 출구 인근에서 현금수거책으로부터 해당 수표를 건네받아 자신의 계좌에 입금한 뒤, 2억원어치 백화점 상품권을 사 조직원에게 넘겼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이아영 판사)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기통신을 이용한 사기 범행은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범죄”라며 “적발이 어려워 피해회복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상품권 구입 및 전달책은 범행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역할”이라며 “피고인의 범행 가담 정도 가볍지 않고, 적지 않은 대가를 취득했다. 피해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범행의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점을 참작했다. 아울러 김씨가 동종 범행으로 징역 2년 6개월·3년·5년을 각각 선고받고 항소한 별도 사건 3건과 함께 심리했을 경우의 형평성도 고려했다.

건당 4만원 임장 알바에서 ‘상품권 업무’로

시작은 구직사이트에서 소개받은 임장 아르바이트였다.

김씨는 지난해 6월 중순께 구직사이트를 통해 한 업체의 ‘최 팀장’으로부터 부동산 임장 업무를 권유받아 건당 4만원을 받으며 일했다. 이후 최 팀장을 통해 알게 된 ‘우 대표’로부터 ‘상품권 업무’까지 제안받았다.

김씨가 맡은 업무는 신원을 모르는 사람에게 수표를 받아 사업자등록을 하면서 개설한 계좌에 입금하고, 계좌와 연결된 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사 제3자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실제 김씨는 우 대표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명의로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개설했다.

수표를 받을 장소와 상품권을 넘길 장소도 우 대표가 지정했다. 김씨는 수표를 입금할 때마다 입금 내역을 사진으로 찍어 우 대표에게 보냈다. 보수는 구매한 상품권 금액의 0.3%였다.

조직은 임씨에게 전화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8월 26일 또 다른 피해자 강모씨에게도 연락했다. 카드회사 직원과 검사 등을 사칭하며 명의 도용과 자산 보호를 내세워 같은 방식으로 강씨를 속였다.

강씨는 같은 달 28일 전북 익산 한 교회 부근에서 현금수거책에게 50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건넸고, 이날 김씨는 서울 서초구 한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김과장’으로 불리던 전달책에게 이 수표를 받았다. 김씨는 이를 곧장 5000만원어치 백화점 상품권으로 바꿔 조직원에게 제공했다.

출금 정지에도 계속된 범행…”오늘 은행 느낌 안 좋습니다”

김씨는 법정에서 수표를 받아 상품권으로 바꿔 전달한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다만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인식이 없었고, 조직원들과 범행을 공모한 적도 없다며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씨가 업무를 맡게 된 경위와 수표·상품권 전달 방식 등을 근거로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채용 과정에서 별도의 면접 절차를 거치거나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었다. 최 팀장과 우 대표의 신원은 물론 업체의 주소와 전화번호, 존재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같은 과정이 “그 자체로 비정상적이거나 이례적”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상품권 업무’에 대해 “범죄수익에 대한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행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규정했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졌다면 이런 행위가 보이스피싱과 연루됐을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취지다.

김씨는 범행 과정에서 카드나 통장의 출금이 여러 차례 정지되는 일을 겪고도 우 대표에게 이를 알린 채 범행을 이어갔다. 지난해 8월 28일 5000만원짜리 수표를 전달받은 당시 우 대표에게 “오늘 방문한 은행 느낌이 안 좋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해당 발언을 상품권 업무의 불법성을 인식한 정황으로 짚었다.

재판부는 김씨가 단순히 수표를 수거해 상품권으로 바꾸면서도 기존 임장 업무보다 더 높은 보수를 받은 점에 주목했다. 또 김씨가 부동산 컨설팅과 상품권 업무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60대인 김씨가 범행 전 일반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까지 종합해 적어도 보이스피싱에 가담한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김씨를 이 사건 범행의 공동정범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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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