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앞에서 재선거와 수개표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처음엔 선거가 이상하다는 말이 계속 들려서 봤는데, 한 달 넘게 사람들이 여기 있는 걸 보니 직접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20대 남성 집회 참가자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화면에는 선거 관련 영상과 온라인 게시글이 떠 있었다. 그는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서라기보다, 사람들이 왜 계속 의문을 말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뒤, 송파구 개표소가 있던 올림픽공원 주변으로 시민들이 모였다. 집회는 한 달을 훌쩍 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시작된 집회
올림픽공원 주차무인정산기 주변에 재선거와 당일 수개표를 요구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이날 올림픽공원 인근 광장에는 천막과 간이 의자, 현수막이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쉬거나, 무대 쪽 구호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었다. 피켓을 들고 경기장 입구 앞을 걷는 사람도 있었고, 휴대전화로 집회 생중계 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20·30대 참가자들은 온라인에서 확산한 자료와 영상을 자주 언급했다. 30대 직장인 A씨는 “유튜브에서만 보다가 실제 현장 분위기가 궁금해서 왔다”며 “의혹이 맞는지 틀린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질문 자체를 이상한 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참가자는 “정치 집회에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다”라며 “온라인으로만 보면 감이 안 와서 직접 와봤다”고 했다. 그는 “재선거가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젊은 참가자들은 이렇게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표현보다 선거 절차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한 30대 집회 참가자는 “재선거가 실제로 되느냐는 별개 문제”라며 “문제가 없다면 왜 문제가 없는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승만·박정희 부르는 50·60
올림픽공원 집회장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과 성조기, 태극기 등이 설치돼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광장 한쪽에서는 보수 성향 참가자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 세워져 있었고, 주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이 놓여 있었다. 일부 참가자는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을 각각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 “산업화를 이끈 사람”이라고 말했다.
60대 참가자 B씨는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이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나라를 세웠고, 박정희 대통령이 먹고살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선거가 흔들리면 나라의 기본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50대 참가자 C씨는 사전투표 폐지를 요구했다. 그는 “당일투표하고 수개표하면 될 일을 왜 복잡하게 하느냐”며 “기계를 믿으라고만 하지 말고 사람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층이 유튜브 영상과 자료, 선거 관리 절차를 주로 말했다면 50·60대 이상 참가자들은 국가 정체성, 반공, 보수 정치의 역사적 상징을 더 자주 언급했다. 같은 재선거 요구 집회 안에서도 세대별로 꺼내든 단어는 달랐다.
태극기를 접던 한 60대 여성 참가자는 “우리는 나라 걱정돼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와주는 게 고맙다”며 “정치 싸움이라기보다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느냐의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이 손잡고 온 40대 부모들
올림픽공원 재선거 요구 집회 천막에 슈퍼마리오 가면과 손글씨 피켓, 태극기와 성조기가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가족 단위 참가자도 있었다. 천막 아래에는 아이와 함께 앉아 간식을 먹는 가족이 있었고, 일부 부모는 아이 손을 잡고 현수막 앞을 지나갔다. 주변에는 생수와 컵, 간이 의자, 돗자리가 놓여 있었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왔다는 40대 D씨는 “아이에게 모든 내용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투표가 중요하다는 건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나도 현장에서 나오는 주장을 다 믿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의문이 있으면 묻고, 설명을 듣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40대 참가자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게 맞느냐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부모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정도는 보여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이 있는 만큼 현장도 과격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족 참가자들은 무대 앞보다 뒤쪽 그늘이나 천막 주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뛰어다니거나 돗자리 위에 앉아 있었다.
천막과 포토존, 길어진 농성
재선거 요구 집회 천막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천막 앞에는 재선거·당일투표·수개표를 요구하는 피켓이 붙어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한 달 동안 집회 현장에는 여러 시설물이 생겼다. 천막, 포토존, 안내판, 물품 보관함, 무료 나눔 상자 등이 놓였다. 한 천막에는 “후원금 받지 않습니다”, “모든 봉사자들은 시민분들의 자발적 참여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스티커와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는 공간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필요하면 가져가라”며 작은 태극기 스티커를 건넸다. 다른 천막에는 방석과 물품이 정리돼 있었고, 참가자들이 번갈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30대 E씨는 “처음엔 재선거 요구 하나로 들렸는데, 와서 보니 사람마다 말하는 게 다르다”고 했다. 그는 “선거를 다시 하자는 사람도 있고, 수개표를 하자는 사람도 있고, 사전투표를 없애자는 사람도 있다”며 “다 같은 생각으로 모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한 달 넘긴 집회
집회장에 태극기 스티커와 소형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는 상자가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올림픽공원은 집회장인 동시에 시민들이 오가는 공원이다. 산책 나온 시민들은 현수막 사이를 지나갔고, 일부는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자전거를 탄 시민은 집회 구역을 피해 돌아갔다.
집회 참가자들은 더위와 비를 피하기 위해 천막 아래에 모였다. 그늘 아래에는 음료병과 손부채, 휴대용 선풍기가 놓여 있었다. 무대 앞에서는 구호가 이어졌고, 뒤쪽에서는 참가자들이 서로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며 선거 관련 영상을 돌려봤다.
50대 참가자 F씨는 “한 달 넘게 여기까지 온 건 그냥 화가 나서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처음엔 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계속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장을 떠나던 20대 참가자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비슷해 보인다”고 말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